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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無影塔)

 

 

이른 봄이었다. 해는 서녘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돌을 다듬는 정소리가 화창한 햇빛 속에서 튀었다. 숲 속에서는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는 둔탁한 음향이 들려왔다. 스산한 바람이 아사녀의 치마를 펄럭이게 했다.

 

아사녀는 연못가를 돌며 이따금 공사가 한창인 불국사 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가려진 불국사를 바라다보는 아사녀의 눈엔, 어느 덧 이슬이 맺혀 여위어 까칠해진 볼을 타고 흘렀다.

 

아사녀는 깊은 한숨과 함께 못 속을 들여다보았다. 못 속에는 흐르는 흰 구름 사이로 한참 쌓아 올라가고 있는 다보탑과 대웅전, 백운교, 청운교가 비쳐 있었다. 그러나 아사녀의 남편 아사달도, 아사달이 돌을 깎고 쪼아 쌓고 있을 석가탑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다. 아사녀는 눈물을 닦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못 속에 흐르는 것은 흰 구름뿐, 아사달도 석가탑도 없었다.

 

아사녀는 못 속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마냥 서 있기만 했다. 문득 숲 사이로 아사달의 얼굴이 환히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비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그늘을 지우며 흘러가는 흰 구름이었다.

 

아사녀는 흠칫 놀라듯 돌아서 불국사 입구 돌다리가 놓인 곳으로 뛰어갔다. 천방지축 뛰어가는 아사녀의 허리에 감긴 치마가 흘러내렸다. 아사녀는 다리 난간에 앉아 있는 스님에게 다가섰다.

"스님, 아무리 연못 속을 들여다보아도, 그리운 낭군의 모습은 없습니다. 스님, 석가탑도 보이지 않아요, 어찌하면, 어찌하면 아사달을 볼 수 있을까요?"

 

아사녀는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애원했다. 아사녀의 야윈 볼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직 저의 지성이 모자라서입니까? 어찌하면 아사달을 볼 수 있습니까? 스님, 이렇게 미칠 듯이 그리워하는 저의 정성이 아직 모자란 것일까요?"

아사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스님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아사녀, 그대의 애끓는 심정은 참으로 안타깝소. 그러나......"

스님은 감았던 눈을 떠 아사녀를 연민의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 그러나 아사녀, 아사달을 만나려는 그대의 마음은 한낱 오욕(五欲)이 빚는 사랑이오, 그러한 사랑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아사녀, 그대는 자기를 버린 오욕을 떠난 맑은 마음으로 아사달을 보기를 기원해야 하오. 아사녀의 마음에 오욕으로 인한 티끌이 가실 때까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시오. 그러면 자비하신 관음보살님의 은혜를 입으리다."

 

아사녀는 스님의 말을 먼 산울림처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에서 세찬 반발이 솟구쳐 올랐다. 피골이 상접한 아사녀의 여윈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나의 이 애끓는 마음을 모르신담!"

 

아사녀는 스님을 노려보았다. 눈물이 고인 눈은 스님을 저주하고 있었다.

 

"아사녀, 아무런 잡념 없이 불전의 탑을 조선하는 아사달의 지극한 정성을 따르시오. 아사녀, 아사달을 그리는 마음에 티끌이 낀다면 그것은 그대가 바라는 바가 아니리라. 마음이 오욕을 떠나 밝혀졌을 때 그대 마음에 아사달이 비칠 것이오."

 

스님은 조용히 일어섰다. 다리를 건너 경내로 들어가는 스님의 머리 위에서 석양의 마지막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아사녀는 숲 속으로 사라져 가는 스님의 뒷모습에서 범할 수 없는 숭고함을 느꼈다. 아사녀는 멀어져 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향해 합장하였다.

 

어둠이 산기슭에서부터 내려왔다. 달은 못을 은빛으로 빛내며 숲을 더욱 어둡게 비쳤다. 어두운 숲은 아사달과 아사녀를 가로막는 장벽과도 같았다. 숲 속을 울리는 맑고 경건한 목탁 소리가, 아사녀의 가슴을 더욱 조이게 했다.

 

목탁 소리는 아사녀의 가슴에 울리고, 그녀의 고동은 목탁소리와 함께 숨가쁘게 여울져 뛰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슬픔 같은 것이 아사녀의 온몸을 휩쓸었다. 가슴에 두 손을 모은 아사녀는 차츰 염불에 열중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염불의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아사녀는 때때로 아사달을 불렀다.

 

삼매에 젖어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아사녀의 염불은 관세음보살이 아사달이 되고, 아사달이 관세음보살이 되고 일심으로 부르는 관세음 보살은, 수없이 아사달을 부르는 소리로 바뀌었다. 아스라해지는 의식 속에서 아사녀는 아사달을 일심으로 불렀다.

 

저녁 노을이 산허리를 감돌 때면 아사녀는 남편이 돌아 올 길목을 지켜보는 것이 일과였다. 뒷산 절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아사달을 기다렸다. 저만큼 아사달의 모습이 나타나면 그냥 서 있을 수 없는 아사녀는 총총 걸음으로 뛰어갔다.

"아사녀, 바람이 찬데 어찌 예까지 나왔오?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아사달은 늘 그랬다. 그의 온몸에서는 아사녀에 대한 사랑이 강물처럼 흘렀다.

 

아사녀는 그러한 아사달에 앞에 서면 수줍음과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뛰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이 났다.

"기다리기가 어찌나 지리한지 모르옵니다. 그냥 지아비 있는 곳으로 뛰어가고만 싶은 것을......"

 

아사녀는 말을 마칠 수 없는 행복에 젖는다. 아사달은 아내의 손을 꼬옥 쥐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사녀, 곧 일이 끝나게 되오. 그때는 하루 종일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아사달은 또 떠나야 했다. 불국사의 탑을 쌓기 위해서 천리 먼 신라 땅으로 또 떠나야 했다. 며칠이 걸릴지 기약할 수 없는 길, 아사녀는 아사달을 떨어져 있을 것이 두려웠다. 차마, 떨어져 그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사녀는 아사달을 떠나 보내며 안간힘을 써 몸부림쳤다. 두 사람은 나눌 수 없는 손길을 나누어야 했다.

 

아사녀는 온 생애가 끝나는 것 같았다. 어둠이 그녀의 생애를 덮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어둠을 헤치고 나오려 했다. 그러나 어둠은 겹겹이 싸여 아사달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아사달을 부르며 어둠 속을 마구 달렸다.

 

아사달을 부르는 소리가 어두운 숲 속 나무 사이로 퍼져 나갔다. 수 없이 많은 메아리가 되돌아 왔다. 아사녀는 메아리에 이끌리듯 숲 속을 헤맸다. 아사녀의 앞을 시냇물이 가로막았다. 그녀는 시내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돌다리가 놓인 곳에서 파수병이 아사녀를 불러 세웠다.

"어디를 가시오. 못 가오!" 파수병이 길을 막고 섰다.

"지아비 찾아 백제 땅에서 온 아사녀이옵니다. 제발 들어가게 해 주오."

"아니되오. 절을 짓는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잡인을 금하랍시는 왕명이오. 여자는 더구나 아니되오."

 

아사녀는 파수병 앞에 무릎을 끓고 손을 모아 애원했다. 그러나 파수병은 아사녀를 창대로 밀어낼 뿐이었다. 아사녀는 불국사 담을 끼고 돌며 아사달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허공에 퍼져 울리는 아사녀의 애끓는 소리뿐, 아사달의 대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아사녀는 담을 넘어 들어갔다. 아사달을 찾아 석공들이 잠든 방을 살폈다. 불이 켜진 곳에 이르자, 거기 아사달이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아사녀는 그만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방문을 열고 아사달의 품으로 뛰어든 아사녀는, 아사달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수없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사녀! 아사녀, 어찌 이곳에..... 보구 싶었오. 미칠 듯 보구 싶었오!"

놀랍고 반가운 아사달은 말을 더듬으며, 아사녀의 온몸을 아스러져라 껴안았다.

"아사달! 얼마를 찾아 헤매었는지..... 이제 다시는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다."

 

기쁨과 슬픔과 가슴 메어지는 사랑으로 해서  모든 것을 잊은 두 사람은, 오직 두 사람만을 전신과 마음으로 느낄 뿐이었다. 육체의 감각적인 모든 기관이 상대방을 사랑하고,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만 활짝 열렸다.

 

우주와 지구 위에 모든 것은 그러한 그들을 뜨거운 포옹 속에 녹아들어 마치 그들의 일부분인 양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잊었다. 시간이 그들 위에 머물고, 공간은 그들을 위해서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을 결코 그들 위에 머무를 수 없는 것. 그리고 공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우주의 섭리는 그들만을 위해 윤회를 멈추지 않는다. 아사달의 가슴속에 서서히 일말의 불안이 깃들기 시작했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종이 울리고 목탁 소리가 정적 속에 잠든 절을 깨웠다. 갑자기 절 안이 술렁댔다. 아사달은 두 개의 각기 다른 욕망사이에서 고뇌했다. 이대로 아사녀와 함께 백제 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머지않아 마칠 공사를 눈앞에 두고 돌아설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왕명을 어기고 절 안에 들게 한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왕명은 엄했다.

 

왕명을 어긴 죄인은 비복이 되어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 두 사람이 평생을 헤어져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다. 아사달은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사달, 안색이 좋지 않으옵니다. 무슨 일이옵니까? 말해 주세요. 안타깝고 불안하옵니다."

"아니오, 아무 것도...."

"아니옵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음에 틀림 없아옵니다. 흑......"

 

아사녀는 망설였다.

".... 제가 떠나야 하나요? 제발 보내지 말아 주옵시어. 떨어지지 않으리다. 아사달,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리다." 아사녀는 파랗게 질려 불안에 떨면서 말했다.

 

"아사녀, 잠깐이오, 지금까지 천리를 두고 떨어져 살아왔오. 이제 공사는 얼마 남지 않았오. 공사가 끝나도록 기다려 주오. 왕명을 어기고 임자가 이곳에 들른 것이 알려지면,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은 없는 것-----자 아사녀, 사람들이 알기 전에 이곳을 떠나주오."

"그러나, 어찌 지루한 나날을 기다리라 하는지, 모르겠나이다! 모르겠아옵니다!" 아사녀는 아사달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흐느꼈다.

 

"아사녀, 지리하고 견딜 수 없을 때면 절 앞 영지(影池)를 들여다보시오. 내가 쌓아 올리는 탑이 비치고 일하는 모습도 비치리다."

 

말을 마친 아사달은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아사녀는 울며 아사달의 옷깃에 매달렸다. 그러나 손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아사녀는 온 힘을 다해 아사달의 옷깃을 붙들려 했으나, 아사달은 자꾸만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 갔다.

 

좁은 방안에 있으면서도 아사달은 아사녀의 손에 닿지 않았다. 아사녀는 아사달을 부르며 다가갔다. 웃는 듯, 우는 듯한 아사달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아사달은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아사달을 붙들려 했다. 아사녀가 가까이 갈수록 아사달은 그만큼 먼 거리에서 그녀를 손짓하듯 바라볼 뿐이다. 안타까운 아사녀는 있는 힘을 다해 아사달을 불렀다.

 

꿈이었다.

 

아사달을 부른 소리에 소스라쳐 깨인 아사녀의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염주가 그녀의 팔에 감긴 채였다. 염불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은 아사녀는 아사달을 부르다가 어느 듯 잠이 들었다.

 

아사녀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둠이 가시고,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맑게 가라앉은 연못은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잔물결이 수면을 흘러가는 흰 구름을 주름잡고 있었다. 아사녀는 숲에 가리운 절을 돌아보았다. 아사녀의 눈에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이슬은 햇빛을 받아 빛났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연못 속에는 어제와 같이 구름이 흘러가고 대웅전과 다보탑과 백운교와 청운교, 그리고 울창한 숲이 내려와 있었다.

 

아사녀는 연못가로 다가갔다. 한 걸음 다가서서는 연못 속을 들여다보고, 또 한 걸음 다가서서는 연못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덧 아사녀의 걸음은 잰걸음이 되고, 아사녀는 끊임없이 아사달을 부르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숲을 배경으로 하고 아사녀의 얼굴이 물에 비쳤다. 순간 아사녀는 연못가에 걸음을 멈춰섰을 때 수면이 일렁거렸다.

 

아사녀의 얼굴이 흩어졌다가는 모아지고, 모아졌다가는 흩어졌다. 흩어졌던 얼굴은 아사녀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아사달의 얼굴로 보이기도 했다.

 

아사달의 얼굴이 환히 웃으며,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아사녀는 두팔을 들어 아사달을 불렀다.

 

그러자, 아사달이 저만큼에서, 팔을 벌리고 그녀를 손짓해 불렀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노도처럼 그녀를 휩쓸었다. 아사녀는 아사달을 부르며 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사달을 부르는 애절한 외침이 수면에 퍼져 올랐다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뛰어왔을 때는, 아사녀의 꿈과 사랑과 비원(悲願)을 함께 삼켜버린 영지(影池)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수면에는 흰 구름이 흐르고 숲을 안은 불국사가 비치고 있을 뿐, 석가탑은 비치지 않았다. 아사녀의 슬픈 죽음을 전해들은 아사달은 아사녀를 부르며 못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은 무서울이만큼 애절한 젊은 백제 사람의 사랑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영지에 비치지 않는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다해서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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