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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朴淵瀑布)

 

 

일찍이 송도 삼절(三絶)로 손꼽던 황 진이 자신의 미모(美貌)도, 서화담(徐花譚)의 사람됨도 찾아볼 수 없어 우리는 새삼스럽게 무상을 느끼게 되지만, 아직 [박연폭포] 하나가 삼절의 외로움을 당해 내고 있어, 우리들의 발길을 옮기게 하고 있다.

 

박연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九龍瀑), 설악산의 대승폭(大勝瀑)과 함께 한반도의 삼폭(三瀑)이라 일컬어지는 절경이다. 구룡폭을 성폭(聖瀑), 대승폭을 신폭(神瀑)이라 하는데 비해, 이 박연폭포는 선폭(仙瀑)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이 폭포를 박연폭포니 선폭이니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

 

박연폭포가 있는 천마산(天馬山) 가까이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에는 박진사(朴進士)라는 퉁소를 잘 불기로 이름난 한 선비가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당당한 풍채에 그의 나무랄 데 없는 인품은 뭇사람의 규범이 되고도 남았다.

 

어느 쾌청한 날.

 

박진사는 불현듯 천마산 폭포 있는 데로 가서 퉁소를 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폭포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불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맑고 애틋한 가락의 여운은 아무래도 폭포의 화음이 있어야 만이 어울릴 법도 하다.

 

박진사는 어머님 앞에 나아가 날씨도 좋고 하니, 폭포 구경이나 가시자고 했으나,

"온, 그랬으면 좋으련만, 난 허리가 아파서 그렇게 먼데 까지 갈 수가 있어야지. 대신 좋은 벗들이나 불러서 함께 가려므나."

 

효성이 지극한 박진사는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가 원이었으나, 박진사의 어머니는 한사코 사양하는 것이었다.

 

박진사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 들었든지,

"얘야, 부디 해가 늦지 않게 돌아 오거라." 하고는 쓸쓸히 웃는 것이었다.

 

박진사는 친구 두어 사람과 더불어 경치 좋은 천마산 폭포 아래에 가서, 술을 걸르며 종일토록 퉁소를 불며 즐기었다.

 

간간히 화답하는 산새 소리며, 폭포 떨어지는 장쾌한 물소리에 묻어 내리는 박진사의 퉁소 소리는, 흡사 구슬 알을 구리듯 낭낭하면서도, 연연한 가락이 끊일 사이 없이 꺾였다 가는 높아지면서 은은히 흐르는 것이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친구들은 이제 그만 돌아갈 것을 박진사에게 청했으나, 퉁소불기에 도취된 박진사는 묵묵부답 퉁소만을 꺾고 있었다.

"여보게! 박진사. 이제 날도 저물었으니, 그만 내려 가세나. 날이 저물었대두.... 허어, 이 사람 알아듣지를 못하는군. 갈 길도 험하구 한데--."

한층 흥취를 돋구는 박진사는 문자 그대로 무아경(無我境)에 도취한 사람 같았다.

 

친구 두 사람은 날도 저물고, 어찌하면 좋겠는가하는 얼굴들을 하고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우리 먼저 가세. 박진사의 흥취를 깨는 것두 뭣하구....."

"파흥(破興)은 비례(非禮)라. 우리끼리 먼저 감세."

 

친구들이 산을 내려가는 것도 모른 채, 박진사는 줄곧 퉁소 불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우린 앞서 가네. 너무 늦지 말고 곧장 내려오게나. 자네 자당님께서 기다리고 계셔."

 

어느새, 날이 저물고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지만, 박진사는 돌아갈 생각을 않고 퉁소 불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달 아래에 앉아 퉁소를 부는 박진사의 모습은, 마치 한 폭 산수화(山水畵) 속에 앉아 있는 신선 같기도 했다.

 

이 때, 폭포수가 떨어져 웅덩이를 이룬 용 못 속에 사는 용녀(龍女)가 잠에서 깨어나 절절이, 꺾이는 퉁소 소리의 방향을 찾아 고개를 쳐들고 물위로 나타났다.

 

그 용녀가 이 용못 속에서 천년을 넘겨 살았지만 박진사의 피리소리 만큼 그토록 아름답고 애틋하고, 고운 가락은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는 가락이었다.

 

용녀는 퉁소 소리나는 곳을 따라 점점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폭포 소리와 박진사의 퉁소 소리만이 들릴 뿐 산새도 산짐승도 제가끔 보금자리를 찾아 잠이 들만큼 오래된 한밤중이었다.

 

폭포수 아래 깊은 용 못에서 깊이 잠든 용녀의 꿈을 깨도록 할 만큼, 절묘한 퉁소 소리만이 계곡의 정적을 깨치고 있었다.

 

<오라, 저 사람의 모습을 보니 과연 저토록 절묘한 퉁소 소리가 나고도 남을 만 하지>

 

용녀는 박진사의 퉁소 부는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해서 박진사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가만 있자! 어떻게 저 사람을 홀린다?>

 

귀골로 생긴 풍채하며, 속세 인물치고는 드물게 보는 남자라고 용녀는 생각한 나머지, 박진사의 옥 굴리는 소리와 더불어 천년이고 만년이고 용 못에서 함께 즐기며 살고 싶은 생각만 점점 굳히기에 이르렀다.

 

용녀는 이내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둔갑을 하고, 퉁소 소리에 맞추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박진사 앞으로 다가갔다.

박진사는 문득 퉁소 불던 손을 멈추고 의아스럽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아니.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저 여인은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 밤중에 이상도 하다>

 

박진사의 피리 소리가 끊기자 용녀는,

"호호호..... 왜 그리 좋은 가락을 불다 마시나이까?" 하고 요염한 웃음을 지었다.

"그대는 누구시온지. 이 밤중에 춤을 추며 나타나셨으니 선녀시오?"

"그대야말로 누구시길래. 그 애틋한 퉁소 소리를 옥굴리듯 하시나이까?"

박진사의 물음에 용녀는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천마산 아래 사는 박진사라 하오."

박진사의 말이 떨어지자, 용녀는 음흉한 배포가 속에 잔뜩 들었는지라 벌써 간계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소저는 일찍이 송도에 살았아온데, 시끄러운 세속이 싫어, 홀로 이 산 속에 집을 짓고 하루하루 쓸쓸하게 지내는 계집이옵니다."

"아, 아니 이 산 속에 집이 있다구요." 박진사는 금시 초문이었다.

 

용녀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과히 이상하게 생각하실 건 없아옵니다. 의심스러우시다면 진사님을 소녀의 집으로 모시겠나이다."

"아니, 나를. 정녕, 나를?"

이렇게 해서 박진사를 유도하는 작전은 용녀의 뜻대로 낙착이 된 것이었다.

용녀는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웃으며,

"자, 가시 와요." 하고는, 박진사의 손을 잡아끄는 것이 아닌가.

"아, 이 백옥 같은 손으로 이 사람의 손을 이끌어 주시고...."

박진사는 앞뒤를 분별할 여념도 없이, 손목을 이끌어 주는 용녀가 황공하기만 하였다. 용녀는 천연스럽게 웃으며,

"미천한 계집이 진사님의 그 맑은 손을 잡은 게 되려 잘 못인가 아옵니다."

꿈만 같다는 진사의 말에, 용녀는 절대로 그렇지 않노라고 박진사를 안심시키며 두 사람은 발길을 옮겼다.

 

용녀의 집에 다달은 박진사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용녀의 집이라는 곳은 바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깊은 못이었다.

불안한 빛을 감추지 못하는 박진사에게 용녀는 또 한번 간드러지게 웃으며,

"진사님께서는 정말 꿈을 꾸시는 모양이군요. 아, 이렇게 집을 보시면서도 이 곳이 못이었다구요? 정말 너무 하시군요."

못 믿어워하는 박진사가 원망스럽기라도 하다는 듯한 용녀의 말이었다.

"아, 아니올시다. 너무 황홀해서, 그만."

"진사님, 함께 들어가십시다. 이 집엔 저 혼자서 살고 있어요. 우린 이 집에서 언제까지나 같이 살도록 해요. 천년, 만년이나.... 진사님은 퉁소를 부시고 저는 거기에 맞춰 춤을 추고요."

"낭자, 고맙소이다. 영광스런 말씀이시오."

퉁소의 명수(名手), 박진사는 용녀의 홀림을 받아 폭포 아래 깊고 깊은 못 속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한편, 박진사의 어머니는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천마산 계곡을 헤매며 울부짖었다. 아들이 폭포 속에 빠져 죽었다고 단정하기에 이른 박진사의 어머니도, 끝내는 깊은 폭포수에 몸을 던졌던 것이다.

 

그 뒤로 이 천마산의 폭포는 박진사가 빠져죽은 못이라 하여 박연폭포라 했고, 용녀가 살았다 하여 선폭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모자(母子)의 애화를 남긴 박연폭포는 그저 장관(壯觀)으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시원할 뿐, 그 옛날 박진사가 꺾어 불던 퉁소 소리는 들어볼 길이 없다.

 

지금도 용 못 속에서 박진사는 퉁소를 불고 있는 것일지?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노라면 어디선가 가락이 들리는 듯 마는 듯 하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도읍을 정하고 송도라 했던 개성 땅. 남문(南門) 밖 40리 지점에 박연폭포는 자리잡고 있다.

 

도학자도, 재색 겸비한 명기도, 그리고 박진사처럼 퉁소를 잘 불던 가객도 송도에는 많이 있었다.

한 번쯤 틈을 내어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만도 하련만, 우선 당장은 가볼 수 없는 휴전선 이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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