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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와 출렁다리

 

 

충북 영동에 자리한 천태산 영국사를 올라가다 보면 누교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다락(樓)'루' 다리(橋)'교'자 이름을 붙인 이 마을은 고려 말 피난길에 오른 공민왕이 나라의 안녕을 빌기 위해 영국사로 가던 중 개울을 건널 다리가 마땅치 않자 신하들이 칡덩굴로 선반 같은 다리를 만들었다는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하자 공민왕과 노국공주, 신하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하게 됐다.

 

발길을 재촉하던 왕의 행차는 영동 쪽으로 이어지는 큰길에서 가까운 마니산(강화도가 아닌 영동에도 있는 산) 산성에 잠시 머물기로 했는데, 전황을 들으니 홍건적의 기세가 강성해져 관군이 연전연패하고 그들의 손에 죽어 가는 백성이 부지기수라는 것이었다.

 

왕은 적군의 수중에서 욕을 당할 백성들 생각에 참담한 심정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이때 한 신하가 '가까운 곳에 고찰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부처님께 국운을 빌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그 절은 옛날 대각국사 의천이라는 분이 주지로 있으면서 천태종을 일으킨 본거지'라고 자세히 아뢰었다.

 

멀리까지 피난와 위안이 될만한 일이 없던 왕은 절을 찾기로 하고, 성이 있는 험한 산을 내려와 고개 밑 마을에 이르렀다. 그러나 절 쪽으로 가자면 작은 내를 건너야 하는데 간밤에 내린 비로 골짜기 개울이 크게 불어 도저히 그냥은 건널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신하들은 칡덩굴을 끊어다가 개울양쪽에 기둥을 두 개씩 세우고 출렁다리를 가설하면 되겠다는 묘안을 냈다.

 

인근 백성과 신하들이 협력하여 마침내 칡으로 얽어 만든 다리가 완성되었고, 이 선반처럼 임시방편으로 만든 다리, 즉 누다리를 건너 왕은 무사히 개울을 건너 절에 도착,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이 일로 하여 이 마을 이름이 '누다리'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때까지 국청사(國淸寺)였던 고찰은 왕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 절이라 하여 영국사(寧國寺)로 바꿔 부르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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