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야담

 기인 열전

 해학과 재담

 잊혀진 풍속

 나의 뿌리찾기

금산 보리암의 기이한 석탑

 

 

경남 남해 금산에 자리한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으로 우리나라 3대 해양 기도처로 불릴 만큼 효험이 높다고 소문난 사찰이다.

 

남해의 벽파(碧波)에 발등을 씻으며, 허리에 구름 띠를 두르고 서 있는 금산의 이마에 자리잡고 앉아, 망망한 남해의 하늘 끝을 내려다보고 있는 보리암의 보리는 '도를 이루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보리암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중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이 그것인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장유 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이라고 한다.

  

김수로왕과 허황옥공주 사이에 난 7왕자를 장유선사가 모두 데리고 출가를 했는데, 영남일대에 그 장유선사의 유적이 널려있다고 한다. 그 중 김해 장유암이 대표적인 유적지고, 남해 금산의 보리암도 그러하다고 한다.

 

남해안에서 가장 잘 보이면서도 산의 수려한 자태와 구름이 스쳐 지나가면서 하늘과 산 바다 위에서 일으키는 천태만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장유선사는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님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님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살님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신라 원효대사의 창건설이다.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 산의 승경에 끌려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빛을 발하는 듯 해, 원효스님은 감탄하며 보광산이라 이름을 붙이고 보광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때 창건된 보광사에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린 후 조선왕조를 개국하자. 산에 비단을 둘러준다고 하여 금산(錦山)이라 부르고 절 이름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보광사는 폐사되어 지금은 보리암 뒤에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보리암의 해수관음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우리 민복에게만 숭상되어져 온 관음으로서 해수관음을 보리암에 모신 것은 많은 중생들에게 더 없는 기도도량이 될 것이라는 오고산 스님의 말씀이 있어서라고 한다.

 

석조관음보살을 봉인하던 날 3시경 헬기가 해수관음보살을 모시고 보리암으로 넘어오던 때 광채가 관음상을 비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수관음의 이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보리암에는 참배 기도객 들이 부쩍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서 깊은 사찰들이 울창한 산림 속에 있는데 비해 보리암은 신선이 노닐었을 법한 영봉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자랑이다.

 

삼층석탑은 보리암 앞 해수관음상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석탑은 가야국의 김수로왕의 비, 허태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 온 돌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탑신에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의 진신사리의 조화인지, 아니면 먼바다를 건너 온 인도의 돌이 조화를 부리는지는 모를 일이나, 탑신 가까이에 가서 나침반을 들고 있으면 나침반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현재. 이 석탑은 경남 문화재 제 74호로 지정되어 있다.

 

 

[편집자: 주] 지난 98년 8월에 이 현상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Copyright ⓒ ps50.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