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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錦山)과 이태조(李太祖)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에 속한 남해군에 솟은 금산은 전설의 고향이라 할 만큼 얽힌 전설이 많은 곳이며, 특히 금산 38경으로 유명하며, 금산(錦山)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었다.

 

독자들께서 만일 이곳으로 여행을 가실 일이 있다면, 미리 사전에 익히고 답사한다면 더욱 의미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금산(錦山)은 옛날부터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지리산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다가 노량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 맥을 유지하여 한 점의 섬이 생긴 것이 남해도(南海島)이고, 이곳 남해 섬은 삼남(三南)의 유일한 절승영악(絶勝靈嶽)이며 소금강이라고 불리어오던 곳이다.

 

금산이 영산(靈山)이라 불리어 오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전설에 의한 것도 있지만, 사실적으로 정성을 들여 기도를 해본 결과, 효험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옛날 진시황의 사신 서불(徐市: 市字를 인명에 사용할 경우 불로 읽음)이 선남선녀 500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영험 있는 산으로 이름난 이곳을 찾아왔다가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노라" 하는 표지를 바위에 새겨 놓았다는 이야기.(현재도 흔적이 남아있음)

 

신라시대에 유명한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많은 고승들이 찾아와 기도하였다고 하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주제로 다루고자 한 이야기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를 올리고자 한다.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현재 보리암으로 추정됨)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산 이름도 보광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전국의 유명한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제를 올리고 기도를 하다가, 이곳 보광산에 제단을 쌓고 100일 기도를 하며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보광산의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다는 약속을 굳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그 기도의 효험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태조 이성계가 정작 자기의 목적을 이룬 다음에 크게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고민은 다름이 아닌 보광산의 전체를 어떤 방식으로 실제 비단으로 둘러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사정을 알아차린 신하 중에 한 사람이 하루는 이태조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는 것이다.

 

"폐하! 폐하께서는 너무 상심치 마시옵소서, 저에게 좋은 방도가 있사옵니다".

 

"그래! 좋은 방도가 있다니 다행이구려, 그럼 그 방도를 말씀해 보시오".

 

그러자. 신하는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

"폐하 그 보광산의 이름을 금산(錦山: 비단산)으로 바꾸어 부른다면 보광산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들은 태조는 "그래 그게 아주 좋은 생각이오." 하며, 크게 기뻐하면서 하루 속히 보광산 이름을 바꾸어 금산으로 부르도록 온 나라에 방을 부치도록, 각 지방의 도백에게 하명을 하였다는 것이다.

 

 

★ 이 기도터에는 현재도 이태조기단(李太朝祈壇)이라 하여 조그마한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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