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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구야 들자구야

 

 

먼 옛날. 소백산에는 도적 떼들이 무척 많았다 한다.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자구야 들자구야」라는 민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도둑을 잡기 위한 신호였다고 한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소백산 기슭의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를 경계로 하고 있는 죽령고개에 얽힌 이야기로써 이야기의 무대는 그 옛날에는〔대재〕라 불리었다 한다.

 

이 대재는 험준한 산골인 반면 흉악한 도적들로 인해 주민들은 영주와 단양을 넘나들기가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금품은 물론 심지어 생명까지도 소홀히 여기는 도적 떼를 관가에서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산새가 무척이나 험할 뿐더러 신속히 움직이는 도적들을 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관가에 연일 하소연을 하려 오는 피해자들 때문에 이 고을 사또는 매우 곤욕을 치러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또에게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또 어떤 하소연을 들을까 생각하는 사또에게 할머니는 다가가 귓속말로 몇 마디 이야기를 하더니, 무슨 말이었는지 사또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 후 대재의 골짜기에선 이상한 외침이 울렸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 "다자구야... 들자구야..."

이런 외침은 산적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그들은 그 외침의 주인공을 잡아 오게 하였다.

 

그 사람은 다름이 아닌 사또와 만나 이야기를 했던 바로 그 할머니였다. 산적 두목은 웬 늙은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얼마 전 제 아들이 소식이 끊겨 찾아 헤메이고 있습지요. 큰아들의 이름은 다자구요 이고, 작은 아들 이름은 들자구요 이었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는 산적들에게 붙잡혀 부엌일을 맡아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산적 두목의 생일날이 다가왔다. 부하들은 흥에 겨워 술과 음식을 잔뜩 먹고 마시며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을 때쯤에 "들자구야~! , 들자구야~!"

갑자기 할머니의 외침이 산적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자 산적 두목은 "이 할멈아 무슨 소리야 갑자기." 하며 큰 눈을 부릅뜨고 금방이라도 큰 일을 내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 갑자기 작은 아들이 생각나서......." 그래도 산적 두목은 "조용히 해! 한 번만 더 소리치면 가만 두지 않겠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 한밤이 지날 무렵 산적들은 술에 취하여 하나 둘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흐르는 적막....... "다자구야~! , 다자구야~!"

 

할머니의 신호가 들리자.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또의 군사들이 잽싸게 들이닥쳐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빠진 도적 떼를 일망타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다름이 아닌 산을 지키는 산신령으로서 도적들의 횡포에 화가 난 산신령의 응징이었다.

 

현재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속한 대재(죽령고개) 바로 아래에는 그 옛날 할머니를 기리는 도둑바위라는 바위 앞에 제단(죽령 산신당)이 있다.

 

★죽령 산신당.

지정종별: 지방민속자료 제3호

위치: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산49-9

규모: 1동

 

조선 중기에 관군이 도적 떼를 소탕할 때 한 노인이 공을 세우고 전사한 것을 기념하고자 조정에서 사당을 세우고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러나 그 시대가 분명하지 않으며 이 사당의 건립연대 또한 확실하지 않다. 산신당 또는 국사당이라 부르는데 그 이후 1948년 3월 8일 주민들의 성금으로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특히 근원설화로 인하여 "다자구 할머니당"이라 통칭되어 그 제신이 여성신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호산신에 대하여 발전된 신격임을 부여해 주고 있다. 

 

      

 

[사진출처] 단양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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