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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姓)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유입한 뒤인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며,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산, 강 등을 성으로 삼았다.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강(姜)씨라고,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희(姬)씨로,

순(舜)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으므로 성을 요(姚)씨로 한 것은 이것을 실증한다.

 

 

▶ 삼국시대

 

≫ 고구려 : 우리나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건국 시조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기 때문에 고(高)씨라고 하였으며, 주몽은 충신들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를 사성(賜姓)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중국 한서에 나타나 있는 인명의 기록을 보면, 주몽은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나, 장수왕 때에 장수왕 이름을 고연(高璉)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고구려 왕실의 성을 고(高)씨로 기록하였으며, 장수왕이 사신으로 보낸 고익, 마루, 손참구, 동마 등의 이름에도 모두 성을 사용하였다.

 

≫ 백제 : 우리나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시조 온조(溫祚)가 부여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라고 하였으나 중국의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는 왕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며, 진서, 송서 등의 기록에는 근초고왕(13대)부터 위덕왕(27대)까지는 여(餘)씨로 표시하다가 무왕(29대)부터 부여(扶餘)씨로 기록하였다.

 

≫ 신라 : 박(朴), 석(昔), 김(金) 삼성의 전설이 전해 오며, 유리왕 9년(32)에 육부(六部)의 촌장에게 각각 이(李), 정(鄭), 손(孫), 최(崔) , 배(裵), 설(薛)씨의 성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북제서"에는 진흥왕(540~576)을 금진흥(金眞興)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김(金)씨라는 성을 사용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삼국은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 성을 쓴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7세기 이전 건립된

신라 진흥왕의 4곳의 순수비

신라 진지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술오작비,

진평왕시대에 건립된 경주 남산의 신성비 등의 비문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볼 때 인명에 성을 사용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소속부명(촌명)과 이름만 쓴 것을 보면 우리 선조는 성보다 본(촌명)을 먼저 썼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예를 들어 추정해 보면

 

고구려는 장수왕시대(413~490)부터

백제는 근초고왕시대(346~375)부터

신라는 진흥왕시대(540~576)부터 성을 쓴 것으로 기록에서 추정한다.

 

삼국 시대의 성은

 

≫ 고구려 : 고(高), 을(乙), 예(芮), 송(松), 목(穆), 간, 주(舟), 마(馬), 손(孫), 동(董), 채, 연(淵), 명림(明臨), 을지(乙支)

 

≫ 백 제 : 여, 사, 연, 협, 해, 진, 국, 목, 국 등의 8족과 왕, 장, 사마, 수미, 고이, 흑치

 

≫ 신 라 : 박, 석, 김 3성(姓)과 이, 최, 정, 손, 배, 설의 육부의 6성과 장, 비 등이 있고, 왕실의 성인 고(高),여(餘), 김(金)을 쓴 사람이 가장 많았다.

 

삼국사기에도 성을 쓴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이 더 많았고, 주로 중국에 왕래한 사신들과 유학자와 장보고와 같이 무역을 한 사람들이 성을 사용하였으며, 일반 민중은 신라 말기까지 성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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